2017/10/13 11:40

"초인수업: 나를 넘어 나를 만나다" 박찬국 reading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세상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지와 생명력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 돌와봐야 합니다.


인생이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로 여겨지는 사람은 '이 놀이를 계속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그저 삶이라는 놀이에 빠져서 그것을 즐길 뿐이지요. 우리가 삶의 의미를 묻게 되는 것은 삶이 더 이상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삶을 무거운 짐으로 느끼면서 '왜 이 짊을 짊어져야 하지?'라고 묻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그런 물음이 제기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삶을 재미있는 유희처럼 살아갈 때에만 해소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해소'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주목해주십시오.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어떤 이론적인 답을 통해서도 해결될 수 없고, 그런 물음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으로만 해결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그런 물음은 그것 자체가 해소되어서 사라지는 방식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낙타-사자-아이의 삶(3단계)
낙타: 모든 일에 순종적인 단계
사자: 자신이 처한 상황, 세상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단계
아이: 아이처럼 인생을 유희로 생각하고 아무 생각없이 즐기는 단계


니체는 우리 자신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정신력이 약하다 보니 세계가 그렇게 무의미하고 황량한 곳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신력을 강화할 때 세계는 다시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드러나는 세계에서 매 순간 충만한 기쁨을 느끼면서 경쾌하게 사는 것,
매 순간 자체가 이미 충만한 의미를 갖고 있기에 그 순간의 충일함을 즐기면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아이의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운명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자세 3가지
1. 자유의지의 철학: 인간이 노력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성공할 경우 성취감을 얻지만 실패할 경우 단죄에 빠짐. 노력을 안해서 그렇다는 자기 혐오.)
2. 숙명론: 모든것을 운명의 탓으로 돌림(무기력에 빠질 수 있음.)
3. 운명애의 철학: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 (나는 A는 못하지만 B는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 사실을 사랑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운명애. 부정적인 운명을 견디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하는 것.) -> 나는 A를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사실을 사랑함으로 인해 B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됨. 가혹한 운명은 나를 성숙시키고 단련시키는 존재.


니체에 따르면
우리는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의 예술가는 될 수 있습니다.
삶의 예술가란 매 순간 도취라는 고양된 기분 속에서 삶과 세계를 아름답고 충만한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헬렌 니어링의 자서전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이석태 옮김, 보리, 1992)


거리의 파토스란 기존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탁월한 인간이 됨으로서 기존의 자신이나 저열한 다른 인간들로부터의 거리를 넓히려는 열망입니다. 니체는 이러한 열망이야말로 바로 인간을 발전시키는 동력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연민은 이렇게 우리를 보다 강해지고 보다 탁월한 인간이 되도록 채찍질하는 거리의 파토스를 제거합니다.

니체는 어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연민이 아니라 채찍질이라고 보았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똑같이 자식들을 대한다고 해도 자식들은 각자 타고난 성격에 따라서 부모의 태도를 이해하기 때문에 그것을 달리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우리 각자의 성격은 우리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각 개체는 모두 거대한 바다의 보잘것없는 물거품이나 물방울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세계가 물방울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본질은 물방울 아래 존재하는 거대한 바다입니다.
각각의 인간은 이렇게 거대한 바다와 같은 우주적 의지에서 비롯된 물방울이고, 이러한 물방울이 어떠한 형태를 띠고 어떻게 생겨났다가 어떻게 사라질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우주적인 의지에 의해 이미 정해져있다고 여겼으니까.
따라서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

vs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하면서 각 개인은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형성해 나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르트르는 적극적인 무신론의 입장.
신이 있다면 신은 자신의 뜻에 따라서 각각의 인간을 만들었을 것이고 각 개인의 본질적인 성격을 비롯해서 그 개인이 살아갈 삶의 행로를 이미 지정해주었겠지만,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철저하게 자유롭고 자신을 자유로이 형성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니체는 이 둘을 접목시켜놓은 듯?
니체는 힘에의 의지들이 갖는 성격은 이미 상당해 정해져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신의 성격이나 적성등을 잘 파악하면서 그것을 거스르지 않고 잘 승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니체는 인정합니다. 우리의 타고난 성격과 소질에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스타일을 부여할 것을 요구합니다.
무수한 힘에의 의지들이 부대끼면서 사건들이 일어나고 우리는 그 사건들을 거스를 수 없다. 그것들은 운명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운명을 자신의 성격과 적성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교육하는 방법
1. 길들이는 방식: 인간을 특정한 틀에 맞추도록 강요하는 방식
2. 길러내는 방식: 인간의 타고난 소질과 성향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식




'그대 자신이 되어라'
이를 위해서는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노예근성 때문.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힘에의 의지'가 작동하는 것에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내면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고양시키고 강화시키고 싶어하는 의지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의지는 우리가 피상적인 삶에 자족해 있을 때 병에 걸리게 한다든지 아니면 지금의 삶의 방식에 대해 권태나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함으로써 우리엑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라는 신호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헤르만헤세-단계


자기자신이 된다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타고난 성질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하나의 스타일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격에 '스타일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위대하고 희귀한 예술.
'자기자신이 되는 사람'이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지배하면서 자신을 일정한 방향으로 길러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통제하고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을 초인 내지 고귀한 자라고 일컫습니다. 초인 내지 고귀한 자는 자신의 약점이나 자신이 겪은 고통과 고난까지도 자기발전의 계기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신독이란 단순히 홀로 있는 것을 삼가는 것이 아니라 '홀로 있을 때에도 생각과 행동을 바르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는 사람 한 명 없이 혼자 있을 때에는 아무래도 생각과 행동이 흐트러지기 쉬운 법이지요.


자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감정과 생각을 다스리는 것을 넘어서 신체를 다스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힘들다고 해서 함부로 눕지 말고 그때마다의 상황에서 요구되는 적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신체를 엄격하게 단련하고 훈육해야 우리의 영혼이 강해지고 힘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신체를 완전히 우리의 지배 아래 둘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본능까지 건강하고 기품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눈에 평정과 인내의 습관을 부여하는 것
성급하게 속단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면서 하나하나의 경우를 모든 측면에서 검토하고 조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대로 보려면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반응을 자제하면서 결정을 유예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니체는 우주의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말하는 것도 한갓 독백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어떤 공동체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돈에 연연하지 말고 온 열정을 다 바쳐 그대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그리고 어떠한 곤경이 와도 그것을 자기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면서 흔쾌하게 받아들이라고.
그리하여 니체 자신이 말을 건네는 공동체에 속하여 이 세계를 변혁하라고.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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